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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 (시간역행, 크리스토퍼 놀란, SF첩보)

by geon-3 2025. 4. 25.

영화 테넷 포스터 사진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시간과 인과를 교차시킨 SF 첩보 스릴러다. 보는 이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온몸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강렬한 체험의 영화.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느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

1. 이름 없는 주인공, 프롤레타리아트의 여정

놀란 감독은 늘 주인공에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테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연기한 인물은 단순히 ‘프롤레타리아트(The Protagonist)’로 불린다. 그는 한 테러 진압 작전에서 죽음을 무릅쓴 선택을 하고, 그 대가로 ‘테넷’이라는 비밀조직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 역행(Inversion)’이라는 전례 없는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이 개념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것이다. 즉, 우리는 과거로 걸어 들어가고, 사물은 되감기하듯 작동한다. 총알이 발사되지 않고 되돌아오며, 자동차가 충돌하기 전으로 회복된다. 이런 역행의 법칙을 파악하고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현재를 지켜내야 하는 임무가 그의 손에 주어진다.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닐(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차근차근 퍼즐을 맞춰간다. 그는 감정적으로도 단단한 인물이다. 캣이라는 여성을 통해 처음으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단순한 미션 수행을 넘어서 인류 전체를 위한 선택을 감행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그는 “나는 이제야 내 역할을 안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그가 ‘진짜 주인공’으로 성장해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감정적 스릴러이기도 하다.

2. 역행의 논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감정

《테넷》이 복잡하고 냉철한 퍼즐 영화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이라는 따뜻한 심장이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데비키가 연기한 ‘캣’이라는 인물은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녀는 억압적인 남편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에게 통제당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아들조차 지키지 못할 만큼 삶은 조각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처음엔 그녀를 미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고,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녀의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놀란 영화에서 보기 드문 ‘모성’이라는 주제를 마주한다. 또한 닐과의 관계 역시 감정적으로 중요하다. 닐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그가 ‘과거의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우정은 영화의 시간 구조를 뛰어넘어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시간 퍼즐이 아니라, 그 안에서 교차하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놀란은 수학처럼 보이지만, 그 수학식 안에 사람의 감정을 담는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다.

3. 시간의 퍼즐, 그리고 닐이 남긴 말

닐은 《테넷》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처음엔 유쾌하고 능력 좋은 파트너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조용한 조력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설계한 미래 조직의 일원이었고, 두 사람은 시간의 흐름 안에서 ‘역순’으로 서로를 돕는다. 결국 닐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닐이 남긴 말은 인상 깊다. “이건 너에겐 시작이지만, 나에겐 끝이야.” 이 한마디는 《테넷》이라는 영화 전체의 시간 구조를 함축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의 변수를 겪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인생도 때론 그렇게 뒤늦게야 의미를 가진다. 《테넷》은 닐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해보다 믿음’이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결코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고리처럼 흐른다. 《테넷》은 그 구조 안에서 관계, 우정, 희생, 용서를 퍼즐처럼 섬세하게 배치해 둔다. 한 번으로는 다 알 수 없지만,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테넷》은 단순한 시간역행 영화가 아니다. 복잡한 서사 안에서 ‘인간적인 선택’을 이야기한다. 놀란 감독 특유의 구조적 퍼즐 속에서, 관계와 희생, 성장과 우정이라는 감정의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이해보다도 ‘한 번 더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진짜 이 영화의 매력이다.